어떤 날과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에 디에고는 은퇴를 선언했다. 히어로, 은퇴. 이 역시 특별하지 않은 단어의 나열이었으나 디에고는 은퇴하는 히어로 중 유달리 어렸다. 때문인지 샤를은 바보 같은 표정으로 겨우 '자, 잘 가요.' 라고 인사한 것도 모자라 마지막이니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슬쩍 맨얼굴을 보여준 디에고의 장난스러운 미소에도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찬 줄도 모르고 퇴근하는 자가용 안에서 한참이나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옆 차선에서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음악조차 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음악이 흐르지 않는 샤를로테의 차를 상상해 본 적 있나? 그건 정말이지 이질적인 것으로 빵 없는 샌드위치, 붕어 없는 붕어빵과 같았다. 잠깐, 붕어빵에는 원래 붕어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사람이 있을 테다. 하지만 '붕어빵'이라는 단어에는 분명히 '붕어'가 들어가지 않나? 샤를로테는 기가 차지도 않는 생각으로 기분을 환기하려 노력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아마 평소와 다르게 음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차량이 긴 신호에 걸리자 샤를은 잠시 교통법규를 중시하는 마음을 내려두고 랜덤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했다.
자, 다시. 음악이 돌아왔으니 평소의 샤를로테로 돌아오자. 언제나처럼 샤를로테의 중고 차량에선 오래된 밴드 음악이 흘렀다. 핸들에 얹은 손가락을 박자에 맞추어 두드리고, 흥얼거리듯 따라 노래하며 여유롭게… 조금 더 신나는 노래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모르겠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뭘 느끼고 있는지… 나도 도저히 모르겠어. 기분이 엉망진창이야. 그렇게 인사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 인사를. 다시 인사하면 되겠지.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사람처럼 갓길에 차를 댄 채로 디에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샤를이에요. 혹시 바빠요? 별 건 아니에요. 혹시 저녁 약속 있나요? 없으면 같이 저녁 먹을래요? 제가 살게요. 회사 근처도 좋고 괜찮은 가게도 알아요. 알았어요. 그럼 주소 보내줄래요? 그쪽으로 갈게요. 먹고 싶은 건 없고요? 네. 이따가 봐요. 그냥, 혼자 저녁 먹기 외로워서요. 있다 없으니 허전해서 그런가? 하하…
…앞으로 없을 테니까? 이제 더는 함께 일하지 못할 테니까? 괜한 말을 삼킨 샤를로테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고 차를 돌려 좋아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여전히 차에서는 멈추지 않은 음악이 흘렀다. 나와 여기 누워서 세상을 잊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잊어버리고… 새삼스럽지만 샤를로테는 생각보다 생각에 적성이 없었다. 생각할 바에는 그냥 묻는 게 백번 천번 간단한데 왜 생각을 하지? 물론 많은 이들이 그 점에 고통스러워 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대체로 많은 일은 생각이 아닌 행동을 할 때 해결되지 않던가?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게 오직 본인뿐이라면?
그렇다면… 힌트라도 부지런히 찾아 움직여야지. 이 싱숭생숭한 기분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탐정처럼 집요한 자세가 필요할 테다. 마치 셜록 홈즈처럼!
실없는 생각과 함께 음식을 픽업한 샤를은 디에고가 보내 준 주소로 향하며 미묘한 기분을 정돈했다. 언제나처럼 유쾌한 샤를로테가 왔다고 인사해야지. 그리고 아까는 제대로 못 한 인사도 하는 거야. 그동안 고생했다고. 그 다음에 분위기를 봐서 조심스럽게 왜 은퇴했는지도 물어보자. 식사 중에는 좀 부담스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니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 하는 게 나으려나? 그러다가 문득 애초에 직장 동료가 찾아가는 자체가 부담스럽지 않나? 이거 좀… 이상한 동료 같은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동료야말로 수상하고 꺼려지는 게 당연한데! 헐. 생각 좀 하고 살 걸. 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면 이미 후배의 집 앞이다. 이미 도착한 것을 어쩌나. 음식이 식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아까운 일이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말한 건 꼭 지켜 마땅한 약속이니 크게 심호흡 하고 문을 두드린다. 거짓말처럼 오늘 은퇴한 히어로가 고개를 빼꼼 내밀자 샤를은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디에고! 좋은 저녁 보내고 있었나요? 하고 인사하곤 언제나처럼 요란한 말을 이어갔다.
"좋아하는 식당에서 포장해 왔어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라자냐를 파는 곳인데, 나중엔 식당도 같이 가요. 음, 전 직장 동료가 부담스럽지 않다면요."
아까 생각해 둔 말이 뭐더라? 그런 것을 떠올릴 새도 없이 시시껄렁한 대화와 농담을 곁들인 식사를 마친 샤를은 오늘의 은퇴나 복잡미묘했던 감정이 소화된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로 웃었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 그는 대뜸 제안했다.
"내일도 같이 저녁 먹을래요?"
제가 살게요. 혼자 저녁 먹는 것도 재미없으니까. 어때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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