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은 이후로도 뻔질나게 디에고를 찾아갔다. 근무 일정이 있으니 매일은 무리더라도 시간이 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저녁을 사서 방문하는 식이었다. 가끔은 재료를 사다가 직접 요리하기도 했으나 샤를은 훌륭한 요리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를은 일정상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밴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샤를로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멤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회인 밴드라는 게 대부분 그런 식으로 쫑난다면서 샤를로테의 속을 긁었지만 뭐, 다시 모일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 그러겠지. 암묵적인 믿음 아래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그들은 종종 만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기도 했으나 샤를은 번번이 불참했다.
“요즘 뭐 하는데 얼굴도 보기 힘들어?” ”말하자면 복잡해.” ”혹시 연애하냐?” ”꺼져.”
친구의 질문에는 간만에 락스타다운 욕설로 훈훈하게 통화를 끝마쳤다. 연애는 무슨!
저녁을 함께하는 비슷한 날이 이어졌다.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여유로우면 한 번 더. 기타를 치며 펍에서 노래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시시껄렁하고 즐겁다고 생각했다. 샤를은 '아마 디에고가 일을 그만둬서 못 보게 되는 게 좀 충격이었나?' 추측하며 꼬박꼬박 얼굴을 비췄다. 보면 좋으니까. 겨우 그런 이유로. 야간 당직이 있는 날에는 전화를 걸었다. 뭐해요? 산책이요. 가끔은 DVD를 빌려다가 영화를 보았다. 샤를은 음악 영화나 추천받은 액션 영화를 빌려오곤 했다. 디에고 취향을 물었으나 '글쎄요' 같은 애매한 대답을 들었던가? 샤를도 영화는 잘 모르는 편이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한번은 영화를 보다 깜빡 잠든 샤를을 디에고가 옮겨둔 적도 있었다. 섬세하고 다정하기도 하지. 게다가 나를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참 좋은 사람이야. 샤를은 명백하게 디에고가 좋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재미있고, 다정하고, 귀엽고… 이유를 나열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까? 그저 '선배는 저를 너무 좋아하신다니까요~' 말해도 당연하지 않냐고 의기양양하게 대꾸할 자신이 있었다.
이변 역시 별다르지 않은 날에 일어났다. 저녁을 사 온 샤를이 저녁 준비를 한답시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디에고에게 말을 걸던 중이었다. 별안간 묘한 소리로 기침하기 시작한 몇 차례 지나지 않아 피를 토하던 디에고는 바닥으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급하게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으나 병원에서는 특별한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다. 응급실 침대에 정물처럼 가만히 누운 남자를 바라보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묻고 싶었으나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어떤 말도 없었다. 샤를은 종종 침묵을 쫓아내려는 것처럼 굴었으나 딱히 정적인 상태를 기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예감 탓에 불안해졌을 뿐이다. 이대로 디에고가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겁이 났고, 분주한 응급실에서 이곳만이 고요한 것이 무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을 가늠할 정신도 없이 물속처럼 차갑고 무거운 생각 속에 잠겨있던 샤를은 침상의 작은 움직임에 화들짝 깨어났다.
“괜찮아요? 이래서 그만 와도 된다고 말한 거예요?” ”…저도 제 몸 소중한 건 아니까요.” ”당연하죠!” ”선배. 사실… 저 곧 죽어요.” ”네?” ”그래서 은퇴한 거예요.”
샤를은 불 꺼진 방에서 전등을 찾는 사람처럼 허우적거며 말했다.
“잠시, 잠시만요. 아주 잠깐이면 돼요. 물을 가져올게요.”
실은 그 물을 머리에 끼얹어야 정신이 들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아내고 바깥의 서늘한 공기로 뇌를 환기한 샤를은 침상으로 돌아와 어찌 된 일인지 물었고, 디에고는 생각보다 순순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야속할 정도로… 샤를은 차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위로 해야 하나? 어떤 위로를? 어떻게? '안타깝게 되었어요.'라고, '괜찮을 거예요.' 말하면, 정말 무언가 달라지나? 아니. 샤를은 히어로였지만 시간과 죽음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힘은 없었다. 몇 가지 위로의 말을 떠올리던 그는 어떤 말을 해도 최악이라는 생각에 울렁거리는 기분을 참아내며 겨우 물었다. 마치 모서리에 겨우 걸쳐둔 물건을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서는…
“디에고. 있죠, 저는… 그러니까. 저기, 괜찮아요?” ”완전 괜찮죠. 다른 사람 잘못도 아니고 제가 오버한 거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집에 돌아가요.”